생선가게아저씨
옛것들 본문
비가 내리는 새해 첫 주말이다.
바람은 차고 마음은 날씨만큼 을씨년스럽고 쓸쓸한 그런 아침이다
어떤 블로그가 한 줄 일기를 써보라는 글귀가 가슴에 와닿아 몇줄 써보려는데
첫 해 처음으로 써보는 일기는 펜으로 써 보기로 결정했다.

몇 해 전 선물로 받은 잉크를 찍어서 쓰는 펜을 꺼내서 새로 산 다이어리에 어제의 일상을 적어 보았다.
막상 써보려니 잉크병에 펜촉의 길이를 측량치 못해 펜 대에 잉크가 묻어 글을 쓸 때마다 손가락에 묻어 돌아가는 통에 휴지를 옆에 가져다 놓고 써야 하는 기대치 않았던 우스꽝스러운 자태를 연출하게 되었다.
잉크를 찍어 쓰다 보니 글자가 누름의 정도에 따라 굵고 혹은 얇게 써지는 폼이 너무 재미가 있다.

어릴 적에 누나 형님이 앉을뱅이 책상에 앉아 연애편지를 써 내려가던 기억이 있다.
펜촉을 모나미볼펜뒤에 꼽아 잉크를 찍어 정성에 정성을 다해 써 내려가던 그 진지한 모습이 오늘 내가 이펜으로 글을 쓰다 보니 무릎을 꿇고 한획한획에 정성을 다하는 붓글씨에 못지않은 신경을 써야 하다 못해 정성을 다할 수밖에 없음을 세월이 이많큼 지난
후에 알았다. 이제 그런 누님도 형님도 이 세상사람이 아니니 그저 허공에 웃어본다

나는 연필에 침을 묻혀 쓰던 시대는 아니지만 볼펜이 나오고 샤프가 나오면서 필기구의 혁신처럼 굳이 펜으로 쓰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글씨를 잘 쓸 수 있는 도구가 쏟아지며 펜은 번거롭다는 이유로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그낭만을 잃은 체말이다.
이 펜글씨는 이렇게 써보니
녹녹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펜과 종이의 각도가 중요하고 그 각도가 글자의 모양새를 결정짓는 주요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바른 자세로 써 내려가야만 글자가 서로 어울려 반듯하게 서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반듯하게 보는 눈으로 반듯한 생각을 반듯한 글자로 써 내려감으로 굴절된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을 미리 단절하지 않았나 싶다
그때는 정도를 정하고, 염치를 알고, 예의를 지켜 살았던 시절이었던
기억이 있다.

잉크를 찍음에 그 양과 그 글자의 획수를 알게 되며 흘겨 쓸 수 있는 마음의 급함을 허락지 않음이 있고 많이 누르면 잉크양이 많이 나와 짙게 번지고 얇게 누르면 실눈처럼 구획을 알기 어려웠다. 과한 정을 나누고 넉넉한 마음을 주고 이웃의 얇은 가정사까지 같이 아파하고 나누던 그 인심이 이런 펜촉에서 나왔나 보다
이렇게 아무렇게 써 내려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듯한 종이에 한자 한 획을 한 호흡 함께하며 써 내려가던 그 정성은 펜이란 도구만이 주는 이유가 아니라 그때 그들의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일 것이다. 속이기보다는 어리숙한 속내를 드러내고 살던 속 좋은 이웃아저씨처럼 때로는 속 넓은 이웃아줌마처럼 거칠지만 두툼한 선을 내밀던 정이 있던 그때를 말입니다
거기에는 써내려 갈 때마다 종이 위에
속삭이며 한 자 한 자를 다시 읽어 주는 목소리가 있었다. 지금은 아무런 아우성도 없이 감성이 없이 써 내려가던 글씨가 펜으로 써 내려갈 때는 서걱서걱 서리를 내면서 속삭인다. 그 낭만을 그런 추억을 말이다.

펜을 45 도로 세우고 한획 한글자 고르게 써 내려가야만 전체적으로
이쁜 글씨가 된다
펜글씨 교본으로 글씨를 배웠습니다
그때는 으뜸으로 삼은 것이
맘씨, 말씨, 맴씨, 글씨, 솜씨를 덕목으로 꼽았던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글씨를 잘 쓰고 못쓰고 가
그 사람의 지식이나 인격에 직결되었죠
그러니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단 시절이 아니라 손편지가 중요할 때이니
편지가 감정을 전하고 지식을 풍기며, 한걸음 다가갈수 있는 메신저역활을 하였다. 그 편지를 채워 놓는 글씨가 얼마나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자연히 펜글씨는 잉크로 쓰다 보니 뒷장에 잉크가 베여 나와 뒷장에는 쓸 수 없게 되고 앞뒤로 미음을 숨길 필요없이 새로운 종이에 이어 써야 하니 편지내용이 구구절절이 길어질 수밖에 없어 우리 누님형님은 말수가 적고 가슴으로 나누는 세대였나 봅니다

그런 시절에는 그시대를 살고 겪었던 사람만이 가지고 사는 서운한 마음이 있나 봅니다.
이때 붓글씨와 펜글씨를 쓰던 우리네 정서는 숨기고 꾸미지 않고 앞장에 내 마음을 적어 내는 순박함이 있고 순수함을 갖고 살았는데
이제는 앞장에도 뒷면에도 가슴을 숨기고 사는 모양이 있음이 서글퍼진다

그래도 그때는 마음을 적어서 보낼 수 있는 따뜻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무엇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