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생선가게아저씨

명상과 묵상 그리고 기도 본문

카테고리 없음

명상과 묵상 그리고 기도

timsuh 2024. 2. 21. 11:26

명상과 묵상 그리고 기도

 

세상을 살다 보니 단어의 뜻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사용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전까지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거나 문제를 삼고 살아본 적이 없는데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생각을 정리하고 모으는데, 단어가 주는

의미에 따라 결론이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흐려져 의도와 다른게 시간이 흐른 후 다가옴을 종종 느껴보았다.

스님이나 도승 혹은 선인들은 몸을 정결케하고 생각을 보통 범주를 넘어 차원이 다른 경지에 이르고자 깊은 곳에 칩거를 하면서 조석으로 명상을 함으로

깊이 있는 내공과 선안을 갖추었다 한다.

그 깊이의 깊음은 따스하고 포근함으로 드러나고, 넓음은 나누는 말에서 향기를 실어 나른다 하더군요.

그런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나누고 스스로에게 흥분하여 목청이 높아짐을 막기 위해. 품위 있는 늙은이로 살아가기 위해 좋은 것은 따라 해보리라 하여 시작하였더니.

명상(瞑想·冥想)

고요히 눈을 감고 차분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는 것이라 하니 흔쾌히 가부좌를 틀고 일체의 '잡생각'을 하지 않으려 생각을 매어 본들 들어쉬는 숨을 따라 한 줌의 걱정으로 들숨으로 다가서고 내쉬는 숨결을 따라 욕심의 끝자락을 떨어내지 못한 날숨을 통해 아직은 세상의 이치가 더 좋음에 몸을 던지고 사는 세상의 피부병에 온몸이 가렵고 진물이 나는데도 그 통증을 모른 채 살아온 세월을 발끝을 세워 구석구석 호흡이 미치게 하여 치유 하는 방법을 통해 몸도 마음도 정화시키는 것임을 익히 알고 있다.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게 세워 햇살을

몸으로 받거나, 바람을 느끼며 그 바람을 호흡에 실어 몸 안으로 보내는 신비로운 것으로 동양의 사상에서 묻어 나오는 여유와 깊이 그리고 단조로움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는 것으로 내 안에 쌓인 모든 것을 비어내고, 버리고, 없애는 수련의 일종일까? 동양인만 가지는 겸허의 마음이 묻어 나오는 버리고 또 비우고, 새로운 나를 깨달음으로 얻으려는 것이 명상의 궁극에 목적이라면

내가 있음에 나의 존재가 있고, 나의 깨달음이 나로 국한됨이 아닌 우리에게 미치는 선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이에 반해 묵상은 천주교 신부님들을 떠오르게 한다. 묵상은 그 행위를 통해 내 안에 있는 빈 공간을 채우는 행위를 갖는 것 이 아닐까 싶다. 반복된 삶 속에 묻어 나오는 번뇌나 고민은 새털같이 날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치환하는 힘을 기르고 단단하게 하여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음으로 말씀으로 공간을 채우고 넘치게 라여 다시 깨달음을 통해 위로받고 기쁨으로 발전시켜 평안을 얻어 내는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묵상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갈구한다. 걸인의 마음으로 빵 한 조각을 갈구하듯이 목숨을 건 수도승들의 묵언기도 가 생각이 난다. 비록 그 해답이 얻어지지 않는다 하여도, 바라고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여도

내 안에 빈 공간을 부여잡고 눈물로 절규로 허전한 속내를 아픔으로, 한숨으로 채울 수 있는 전투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목사를 통해서 위로받으려 하고 신부님을 통해 용서받기를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완성보다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무릎걸음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삶이 있는 것일까.

명상도 묵상도 따지고 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힘을 얻거나 깨달기 위해 도달하려는 욕심이 아닐까 싶다

난 오늘도 기도를 한다.

앉아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잠에

서 깨쳐내기 위해 명상을 한다

그리고 나를 깨닫게 되면 한귀절을 읽으며 그 말을 곱씹어 본다.

그러면 그 귀절은 생명을 부여받은 듯 쌓아왔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선다.

거기에서 나를 벼랑 위에 세우고 칭찬도 하고 질책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떤 이에게 나를 고백하고 나를 드리는 시간이 다가온다..

그 시간에 나는 기도를 한다.

무엇을 위하는 것일까

한낮의 꿈과 같은 이야기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시간에 욕심을 이야기하고 욕망을 토하며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겠다는 야망을 갖는 이야기를 한다.

한낱 숨끝에 붙은 이슬처럼 입에서 떠니 버리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일 나는 그래도 명상을 할 것이다.

그 욕심마저 끊어내면 정말 난 빈 컵데기 일테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