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생선가게아저씨

이승에서 산다는것 본문

카테고리 없음

이승에서 산다는것

timsuh 2025. 4. 26. 08:52

산다는 것은 이승에 존재하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을  이승을 떠난다고 한다.
이 세상에 대한 깨달음의 노력을 마무리하고, 저곳 저승에 가서 다시 새로운 깨달음의 세계에 접한다고 하면서 이승과 저승은 다른 세계가 아닌 이어지는 떠남과 존재의 끈이라 한다.
살거나 죽거나 그 모든 것은 깨달음을 쫒는 행위라는 것인가 보다.

그 무엇을 깨달아야 하고 깨우쳐야 할까
이승에 살면서 무엇을 얼마나  베풀고 살았음을 깨달은 순간에 고개를 돌려 뒷발자국을 되돌아본다고 한다.
그 발자국이 다시 저승의 깨달음을 돼 집어보는 업보는 아닐는지 모르겠다. 그다지 착하게도 살지도, 베풀면서 살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겁이 더럭 난다.
 죽음은 새로운 끝도 시작도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승에 산다는 것 또한 녹녹지 않는 일이다. 새벽부터 억지라는 막대기로 잠을 깨워서 몸을 일으켜 세워야 하고,
시리얼조각을 우유에 말아서
그 막대기로 배고픔 속에 밀어 넣고
일을 시작해야 한다.

나는 해가 뜰 때까지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 꿈도 없이 자고 , 침대에서 빈둥거리는 하루만 아니 일주일을 갖고 싶다
"죽으면 평생 자게 될걸 , 뭘 그렇게 자냐"라는 돌아가신 엄마의 목소리가
귀에서 앵앵거리는 듯싶다.
그 잔소리도 그리워지고, 향수마저 느끼고 싶은 것은 과거가 가져다주는 추억이기 때문일까 싶다.
세월이라는 것,
소망일 것이라는 망상들을
고단한 삶 속에 구겨 넣고 살아간다.

미카엘이란 천사는 여인의 영혼을 거두워 오라는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그 벌로 세상으로 쫓겨난다.
그에게 신은  3가지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찾으면 돌아올 수 있다고 하였답니다.
첫 번째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이다.  
그  해답은 사랑임을 그리 길지 않은
세월 울 통해 깨달았고,
자기는 가진 것이 없어도 베푸는 그 마음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랑의 도움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질문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것 이였다.
인간은 하루 앞도 볼 수 없으며 , 일분일초도 예단조차 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무수히 많은 인간들이 가지려 하는 것들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느끼게 되었다
이 때문에 인간에게는 신이 필요하였고, 믿음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 번째 질문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이 질문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베풀고, 불쌍한 이들을 돌보는 마음을 일깨워주는 이해타산이 앞서지 않는  망서림 없는 사랑으로 서로서로에게 나누며. 사랑을 주고, 사랑으로 보듬어 안고, 사랑으로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 다시 천사로써 긴 날개를 펴고 하늘나라로 날아갔다는 톨스토이의 단편집에 나오는 이야기는 살아가는 우리네에게 시사하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이승도 저승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살아야만 하는 선택조차 사치이지만 사는 것은 운명 지어지면 그 운명만큼 사는 것이 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다.
허지만 가기 전에 우리가 베푼 사랑의 크기는 얼마인가 저울에 달아보고 싶어진다

똥밭에 뒹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은 무슨 의미로 만들어진 것일까
이승은 저승보다 좋은 곳일까
이승은 너무 잘 안다. 경험해 본 것과
경험치 않았으나 아는 것이 너무 많다. 그런데 저승은 경험을 해보지 않았지만 경험해 보지 않은 만큼 모른다

그 누구도 현인도 미련한 이도 부자도 가난한 자도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것이 아닐까

그저 막연한 상상이 부풀려서 사실이 된 이야기나 전설이나 구전된 소리가 진실로 믿고 싶어 하는 무리들에 의해 진실화 된 것만 이 존재하는 것이 전부다.
그것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중요하고
큰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죽은 후에도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살아남은 자들에게 영웅담이나 지루한 겨울밤을 채워줄 이야깃거리정도로 남을까..
우리에게 죽음을 고민하고 두려워하면서 살지를 생각하는 이유는 삶을 아쉬워하고 영위코자 하는 욕심이 드러나는 것일 것이다.
부처는 설사병으로 복통을 얇다가 죽어가고,
무함마드도 상한 음식을 먹고 고열을 앓다가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알렉산더죽음도 , 칭기즈칸의 죽음 그리고 진시왕까지 모두가 병으로
죽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병사라 한다. 짧게 아프고 죽는 병사와 길게 아프고 죽는 병사는 지위와 가진 재물의 크기로 마지막 죽음을 대하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나이를 먹으면서 알고 산다.

죽음은 스스로 목숨을 멈추는 것을 우리는 자살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또한 허락하는 이가 용인치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요.
세상의 것으로 몸에 이르며 그 깊이가 깊어짐에 명을 다함을 병마로 거두웠다 한다.
이 또한 거두는 이의 손길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아니할 터
모세의 죽음처럼 기력이 있으나 부르는 이가 불러짐에 그의 나라나라로 이르는 것 또한 죽음인지언정

우리는 죽음을 선택할 수 없으나 선택된 어질 수 선택된 어질 수는 있음을 안다.
그 과정까지 우리가 아는 지식이고 경험치다 이제는 우리의 죽음 앞에 대항하는 것도 아니요 버티는 것도 아니라 우리의 생기를 준 이를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나에게 나의 죽음을 준비할 여유를 주어진다면 나는 소망한다.
모세가 그랬든지 광야에서 나를 보내신 이를 보고 나를 거두실 이의 손길을 기다리며 광야에서 나의 삶을 멈추게 하여주옵소사...라고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