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가게아저씨
여우비 본문
소년은 엄마에게 혼이 낫다.
해도 있는데 소낙비가 쏟아져

마당에 큰누이에게 보내려고 널어놓은 고추가 비에 다 젖었고, 내일 소풍 가려고 다 말려놓은 형님옷이 다 젖었다.
소년은 다락방에서 책 읽기에
흠뻑 빠져 있었다.
밭에 갔다가 비때문에 한걸음에 집으로 온 엄마는 다락방에서 책에 빠져 있는 소년을 보고는 혀를 끌끌 차며
엄마는 소년은 내 쫓아내고 나가라고 한다.읽던 책은 쓰레기통에 집어 던져 버렸다.
소년은 등짝을 맞으며 , 짝도 맞지 않은 슬러퍼를 신고. 대문밖으로 나왔다.

골목길을 지나서 똑바로 올라가면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다. 방학이라 아무도 없다. 시소위에도 미끄럼틀에도 철봉에도 아무도 없다.
학교를 가로질러가면 여우골로 이르는 뒷산이 나타난다.

아버지는 단옷날과 추석에 산 고개를 따라 형과 나를 데리고 성묘를 가던 그 길이다.
좁은 길사이로 잡초가 무성하다 누군가의 무덤인지는 모르지만

그 무덤 넘어 계곡이 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다. 벼락 맞은 나무가 개울을 가로질러 덮고 있어 그 나무를 밟고 더 깊은 계곡으로 가본다. 비가 온 후라서 그런지 엷은 안개가 나무사이로 길을 안내하는듯하다.

얼마를 걸었을까. 배가 고파진다.
그러고 보니 아침을 먹고는 점심때를 넘긴 것 같다. 주위에 산딸기라도 있나 보지만 이끼 낀 돌사이로 맑은 물만 흐를 뿐이다. 잠시 쉬어야겠다.
엉덩이를 붙일만한 곳을 찾아 등을 기대 본다. 나무사이로 빗줄기가 떨어진다. 돌무덤밑으로 자리를옮겨본다.
러닝셔츠만 입은 팔에는 추운 듯 소름이 쏟아있다.

배가 고픔탓인지, 추위가 오는 탓인지
눈꺼풀이 무거워지더니 , 감기는 듯하다.
햇살이 높은 나뭇가지사이로 스며들더니 알 수 없는 곡조에 웅성거림이 들린다. 멀리서 들린 듯 가까이서 들린 듯
소년은 고개를 내밀어 본다. 다시 일어나 큰 고목뒤에 서서 저 멀치에서 다가오는 행렬을 본다.

앞단에는 얼룩덜룩 꼬까를 쓰고 빨리 오는 듯 천천히 걸으며 어깨춤을 휘뿌리며 앞발을 내밀듯 두 손을 앞으로 뻗고는 몸을 낮춘다. 고개는 소년을 쳐다보듯 까웃뚱거리고 그뒷을 이어 하얀 꼬갈모자에 흰옷을 입고 손에 환화를 들은 신부가 종종걸음으로 걸어 나오듯 뒤로 물러서기를 반복한다. 초록색깔 짙은 옷을 위아래로 입은 함진아비가 가슴을 펴고 두 손을 뒤로 젖히며 나서듯 멈추는 듯 걸어 간다
뒤이어서 따르던 이들은 한걸음 두 걸음 세걸음 걷고는 무릎을 굽혀 각자의 방향으로 쳐다본다. 여우얼굴이다

귀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각자의 미모를 뽐내듯이 2개 꼬리를 가진 놈은 돌무덩이 쪽으로 고개를 까우뚱 거리고 꼬리가 한 개인 놈은 고개를 살짝 까우뚱 거리며 멈추자. 다시 음악이 흐르고 행렬은 하나, 둘 , 셋 걸음을 옮기다. 다시 멈추길 소년이 숨어 있던 고목 앞네까지 왔서는 멈춘다.사람냄새가 나서인가 숨소리가 들린 탓인가 소년은 숨을 멈춘다. 이미 가슴은 천둥의 소리처럼 행렬의 음악에 격을 더한다.

그네들이 소년쪽으로 천천히 빠르게 다가오자,소년은 너무 겁이 나서 귓걸음질치다가 개울물에 발이 빠지며 이끼 낀 돌에 미끄러져 버렸다.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쳐버리자
일제히 그 행렬은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 밤에 소년은 아버지의 등에 입힌 채 집으로 돌아왔다.

해가 떠있는 데 비가 내리는 여우비를 목격하면 그 목격한 사람은 여우의 신랑이 되고 , 여우신부에 홀려서 다시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 하여 여우비가 내릴 때는 우산도 쓰지 말고,큰길을 따라 한걸음에 집으로 와야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