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가게아저씨
여행을 간다. 본문
여행은 떠나기 전에 설렘이 소풍을 기다리는 마음을 갖게 되는 어릴 적 기억을 가슴으로 소환한다.

비행기를 예약하는 한 달 전에는 여행하는 날이 올 것 같지 않은
먼 미래같이 느껴졌고, 큰 기대감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사실 여행의 즐거움이 그리 가슴에 와닿기보다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이 더 절실하여 여행을 생각해보지도 못한 이민자의 생활이었다.
그러나 쉬지 않고 달리는 마라토너가 결승점을 앞둔 듯, 출발할 날이 코앞에 다가와 황급히 짐을 싼다. 뭐부터 싸야 할까 하고 잠시 고민한다. 집을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불편을 자초하는 것인데, 그 불편함 울 갖지 않으려는 어리석음이 있다. 그러다 보니 짐이 너무 많다. 세련되지 못한 행위다.
미리 준비치 않은 탓일까?
섬이니 해변이 있을 것이고, 수영복과 반팔, 반바지가 필요하겠군 하는 상식선에서 시작해했으나
그래도 10월인데 춥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여행초심자는 항상 자기가 사는 곳에 날씨에 집착하고, 그 기준으로 정하다 보니 , 짐을 싸고는 도착하여 입지도 못한 채 그냥 가져오는 옷이 많다.

한국에 초여름날씨란다.
미국에 살날이 많은데도 항상 무슨 일이든지 그 기준은 한국이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에 기억이 퇴색하였고, 현실하고 동떨어져 버린 것 같은데도 날이다. 이민온 사람은 자기가 미국땅에 발을 딛뎠던 그날이 한국에 기억이 머물러진다는 것이다. 살다 보니 정말로 그렇다. 80년대에 온 이들은 80년대 서울의 봄 기억으로 머물러있고 90년대 온 이들은 금 모으기 열풍만 추억으로 읊조린다. 2020년 대에 온 이들은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한국을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오다 너무도 발전한 한국에 놀라곤 한다.
머릿속에 몇 날을 세워놓은 계획은 하루밤사이에 무너지고 그날 그 밤에 인터넷을 뒤져 명소는 어디로 가고, 먹거리는 어디 어디 가서 먹고 하루에 두 끼만 먹기로 예산을 세우고 이렇게 마음먹은 계획으로 여행 떠난다.
이 또한 어떠한가 떠난다는 자체로 많이 설레고 기쁘지 아니한가 그렇게 새벽 3시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향한다.

언제 이 새벽에 프리웨이를 달려본 적이 있나 생각해 본다. 미국생활이 다 그렇듯이 어두워지면 웬만해선 길을 나서지 않으니 밤길을 낯설다.
그 낯선 길을 여행을 위해 열어놓았다.
여행은 과거로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재주가 있다.
낯선 곳에 가서 불편한 잠자리에서 잠을 청하고, 익숙지 않은 음식을 먹어보고, 새로운 것을 접하는 흥미로움도 있지만, 그리 큰 즐거움이 가져다주지 않음은 나이가 먹고 너무 늦은 여행이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였다. 젊음이 가져다주는 설렘과 부풀어지는 기대감이 적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 사진을 보면서 흐뭇한 기쁨을 떠올리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래가서 사진 많이 찍고, 즐기는 마음을 갖자고 최면을 건다.

비수기이다.
학교가 개학하면 여행은 비수기이다.
이 시기에는 노인네들만 여행을 다닌다.
연금을 쓰기 위해 열심히 다닌다
급하지도, 넉넉하게 쓰지도 않으면서,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거나, 구부정한 걸음걸이로 명소에 항상 있다
우리 식구는 미국에 처음 온날처럼 여행을 간다.
유일하게 영어구사가 가능한 나를 앞세워 더듬더듬하는 영어로 미국에 발을 딛뎠던 날이 떠오른다.
새로운 곳에 왔다는 기대감보다
두려움이 더 크게 느껴졌던 그날 이후 세월은 참 빠르고 바쁘게 지나갔다. 공항에 앉아 이 생각 저 생각이 깊어지며 걱정과 근심 그리고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그날 이후
이제는 유창한 영어와 해박한 미국적 사고 그리고 세련된 아메리카 스타일적
행동이 있는 아들 그리고 딸이 있기에 이제는 뒷전에서 가라면 가고 있으라면 있으면 된다. 편해졌다 반도 못 알아듣던 말들을 이제는 들을 필요도, 이해할 필요도 없어졌다. 그냥 그들의 뒤만 따리 가면 된다. 먹는 것부터 자는 것까지 해결된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고, 의심 나면 찾아보면 된다. 세상이 참 좋아졌고, 언어의 힘이 크다.

국내여행이라 그런지 까다롭지 않게 비행기에 오르고, 5시간 조금 넘는 비행을 시작한다. 새벽에 나선 탓인지
몸이 피곤하지만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비행기밖으로 펼쳐진 전경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비행기 안에 서비스는 텔레비전도 없고, 끼니도 없다.
그냥 하얀 설빙 같은 구름을 간식 삼고 가다가, 목마르면 음료수를 달래서 마시면 되고, 배고프면 싸간 과자를 먹으면 된다. 그리고 졸리면 자고 잠이 안 오면 안 자면 된다.

어느 시골 버스터미널처럼 정겨운 곳에 도착한다. 끈적끈적한 더운 바람이 창을 타고 들어오고 나지막한 길을 따라 서서히 걸어 나오면 짐 찾는 곳과 출입문이 같이 있다.
어리숙하다.
정녕 이곳이 세계적인 관광지인가?
항공터미널 인가 하는 의심이 든다
자는 사이에 괴산시외버스터미널인가 하고 생각했다.
이제 여행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