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가게아저씨
산동네 아이들 본문
산동네 아이들은 그랬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도 안 닦고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엄마가 차려놓은 앉은뱅이 밥상에 앉아 , 물에 말아서 게눈 감추듯
밥 한 그릇을 먹고 학교를 가는 그 길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밥 먹는 것만이 자랑이었던, 참으로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산동네 사람들은 좁을 길에 나와 앉아 오가는 사람들에게 온갖 간섭을 한다. 그래도 어느 누구도 타박 치 않고 웃어넘기고 , 더위를 피하거나 답답함을 피해 토굴 같은 방보다는 밖이 그래도 숨통을 트이게 한다는 이유를 커서 알았다.
그때는 다 그렇게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지혜를 가지고 살았단 갓 같다
그때는 다들 이렇게 사는지 알았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공과 공터만 있으면 시간 가는지 모르고 놀 수 있는 놀이인지라 학교가 끝나면 학교친구랑 어울리기보다는 동네친구와 노는것이 익숙하다.
산동네 아이들은 좁은 길에서 공을 차기를 허락지 않았다
길 바로 아래에 집이 있고, 쪽창을 통해 집이 드러다 보이는 계단식 무허가 집이 즐비하여 아랫동네 평지나
학교 운동장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랫동네 아이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그 텃세가 너무 심해서 축구를 할 수도 놀 수도 없었다.
작년 폭우로 무너진 언덕 아래로 몰려가서는 돌덩이로 골대를 만들고 두 패로 갈라서 한쪽은 웃통을 벗고 한쪽은 입은 채 맨발로 볼을 찬다.
특별히 잘하는 아이도 없이 볼 하나에 이리 몰려다니고 저리 몰려다니며,
땀이 때국물이 되어 얼굴을 타고 줄줄 흐린 채로 무엇이 신이난지 해가 질 때까지 뒹굴면서 볼을 찬다
누가 지고 이기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누런 러닝셔츠가 집에 갈 때 되면 풀을 먹인 듯 뻣뻣한 채 , 땀 닦은 모양대로 그림을 그린다.

오늘은 월사금을 안 내서 집에 일찍 왔다.
동네에는 옆집 누렁이만 나를 멍하니 쳐다본다. "너, 왜 거기 있어''하는 표정이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부엌에 내려가 아침에 먹다만 밥상에서
남은 밥을 먹는다. 이 더위에 밖에 놔둬 밥을 쉰내가 나면 물에 말아서 행 겨내고 먹으면 된다
맛있다. 밥상 위에 빈 그릇을 그냥 둔 채.
설탕물을 타먹으려고 찾다가 그것도 귀찮다. 툇마루에 누워 뒷 뜰 낭떠러지 아래로 판잣집이 소꿉놀이처럼 어기섥기 지붕들은 장마비를 피한 우산모양 각종색깔의 나무판자로 꿰매져 있다.

아랫동네에서 시작한 선선한 바람이 뒤뜰계곡을 타고 불어온다.
아 시원하다 바람 속에 수면제를 타서 뿌리듯 눈꺼풀이 무겁다. 여름은 덥지만 간혹 불어오는 바람이 여름밤을 지낼 만하게 하고, 틈새가 없이 붙은 집들에서 나는 가난의 냄새가 역겹게 하지만 바람을 타고 이내 사라져 버린다.
익숙한 우리 집 냄새도 아랫집 냄새도, 뒷집까지 같은 모양 냄새로 바뀌는 것은 산동네만이 가진 신비로 옴이다.
이제는 그 냄새조차 기억에서 멀어졌다

산동네는 물이 귀하다.
특히 여름철에는 골목길을 따라 물지게가 오르락내리락한다. 아랫동네 펌프 앞에 산동네 가족들이 줄을 지어 서있고,
형들은 지게를 매고 물을 지어 나른다. 북청 물 장수처럼 지고 온 물만큼 땀을 흘리면서 말이다.
씻고 마시는 것은 최소한으로 이루어진다.
안 씻어도 그뿐이고 이를 안 닦아도 그만이다.

그나마 여름은 편한 쪽이다 겨울에는 펌프도 얼고, 길도 얼고, 마음도 얼어 지게질은 할 수 없다. 어떻게 그 혹독한 겨울은 낫는지 기억에 없다. 겨울은 기억에 없다.
하루가 너무 길었고, 할 일이 많았다.
굳이 공부를 할 이유 없어 보였고, 깨끗이 씻고 다닐 곳도 없었다. 씻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냄새가 낫지만 몰랐다.
다 똑같았다. 그게 산동네에 동질성이다

레슬링을 중계하는 날은 아랫동네 구멍가게에서 돈 내고 보는 사치가 호사였다. 김일의 박치기, 역도산의 당수 반칙에 가슴조이고, 애국심을 부추기는 일련의 액션이 어린 마음을 시뻘겋게 달구는 날이었다. 그날은 동네 모든 아이들이 김일이 되고 역도산이 되고, 천규덕이 되는 날이다
그 비명소리가 정겹게 벽을 타고 흐르면 그 소리에 취해 잠을 자곤 하였다.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옆집 이발소 아들, 건너 집 미장원 딸 그리고 술이 항상 반쯤 취해있던 막노동 아저씨, 해 질 녘 다방 구를 하고 있으면 아이들 사이로 짧은 치마에 빨간 루주를 칠하고 이쁘게 차려입고 길을 나서는 새벽녘에나 들어오는 아랫집 누나.

이제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