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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

timsuh 2024. 6. 3. 09:44

몸이 피곤했는지 오늘은 새벽에 화장실
한번 안 가고 깊은 잠을 잤다.


매번 주어지는 일주일이다.
몇 번 똑같은 시간에 시작되고,
같은 시간대에 마무리
하고 잠자리에 든다.
어느 날부터  잠을 못 자고 괴로운 새벽을 맞이하는 날이 많아지더니
이제는 익숙해진다.
낯설지 않는다는 게
몸은 좀 불편하더라도,
마음을 편하게 하여  좋다.



그 또한 어설픈 루틴이라 명명해도
좋은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일과
생각이 반복되는 삶을 산다.

이날도 새벽에 깨여
다시 잠을 청하였으나,
이미 잠은 저만치 달아나버리고
다시 돌아올 기미가 없어
일어나 할 일을 찾는다
책장을 정리한다.

2014년에 쓴 일기책에서
글을 발견하였다. 


그때 이런 생각을 하고 살였던
나를 대면하니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다.
읽다 보니
내가 나에게 보낸 편지도 있었다.
이렇게 심각하게 세상을 맞아 뜨리면서  살았구나


부딪치며  느낀 넋두리를
두서없이 적은 글들
그때 나의 서글픈 모습에 측은함을 느끼지만 이제는 받아들이는 여유를 갖는
나를 발견한다.

그때의 생각이 떠오르고 그 감성이 마음 한곁에 또 자리하면서 
젊은 그때로 버거운 모습으로 달려간다.


 딸이 첫 취직을 했을 때 감정을 담담하게 적어간 글도 눈에 띈다
<딸이 면접을 보았다. 면접관에게 당돌하게 다음 주 한국에 2주 여행을 가기 때문에 2주 후에 나 연락할 수 있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답답한 놈이다 그래도 이쁘게 봐 주었는지  출근을 하게 되였다>
그때의 황망한 마음을 적은 글을 읽으며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이만큼 성장한 딸을 견주어 보면서 입가에 웃음이 지어지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적은 월급으로 아침 일찍부터 늦게까지 일을 하는 딸이 사회인이란 이름보다 내 딸이란 이름으로 안쓰럽고 안타까워했던 마음이 가슴에 와닿는다 이제는 오히려 딸이 나를 걱정해 주는 상황이 코미디가 아닌가 싶다.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독백처럼
적어내려 간 여러 통의 글 속에서
내가 아들을 많이 의지하고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들, 오늘은 독립하는 날이다. 이삿짐을 차에 싣고 새로 얻은 one room에 짐을 풀면서 기쁨보다 근심이 앞서고 걱정이 더 큰 이유는 너의 독립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이기 때문일까?>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가끔씩 찾아오는 아들에 대한 궁금증과 너무 게임에 젖어 사는 것 같은 불안감 그리고 끼니는 챙기는지 기숙사 생활 때 너무 굶어서 결핵이 생긴 일이 떠오른다는 대목이 있는 것을 읽다가
이렇게 자상한 아빠였는지
나를 돌아본다.


이국 땅에서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열심히 사는 것밖에 없기에 쉬지 않고
일을 하고 반복된 일속에서 내가 가진 꿈을 그려보는 여유를 갖는 것이
또한 행복이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끝에는 언제나 죽음의 가까이 다가설 것 같은 불안감과 존재하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나를 발견하였다,
이제 와서 보면 참으로 부질없는 생각이 두려움이 되어 찾아와
내 코앞에 항상 서있었다



삶이 녹녹지 않지만 이겨나가야 한다는 것이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순응형으로
단순화가 되며,
기계처럼 생각하고, 로봇처럼 반응하며
살아감이란 현실 앞에 저항조차 못하는 길들여진 나를 보고 있는 날들이 많아지고 있었던 것 같다.

왜 이렇게 까맣게 잊어버렸을까
마치 없었던 일이
타인의 이야기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슬픈 과거였기에 기억하기 싫였다

어머니 산소에 대한 글귀가 있었다.


아들이 한국에 여행 중 어머니 산소를 갔다 온 후 산소 정경을 찍어 나에게 카카오톡으로 보내준 일을 상세히 적어놓았다.

< 새벽에 아들이 서울에 가서 어머니 산소를 찍어서 카카오톡으로 보내주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른 뜨거움이 있고, 너무도 미안한 마음이 같이 솟아오른다.
또한 외로운 모습으로 덩그러니 있을 어머니의 묘소가 너무 서글프고 군데군데 떼가 죽은 잔디가 가슴을 헤베 파는 듯싶었다.


아주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할머니 묘소인 망우리를 간 기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할머니 묘소만 가면 술을 그렇게 많이 드시고 걸음을 걷지 못할 정도로 취해서 형들에게 의지하야 집에 오곤 하였다.
단옷날과 추석은 항상 우리 집에 부부 싸움이 있는 날이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아버지는 지금의 나와 같은 심정이 아니었나 싶다.>


6장이 넘는 긴 이야기는
어머니가 살아온 행적은 지금까지 잊고 살았던 미안함과 죄송함이 넘쳐난 넋두리인듯싶다

일제강점기는 나라밖에서 힘들게 살다가 겨우 들어온 조국에서는 전쟁으로 끼니를 걱정하며 살았고


그나마 살면서 젊은 날을 자녀에게 희생하고 사시다. 병들고 쇠약한 몸으로  세상을 떠나가신 그 고달픈 삶에서 
이제는 벗어나 누워 있으나, 어느 누구 하나 찾는 이 없는 무연고 묘소가 되어가고, 마음조차 편하지 않을 것 같아
아들이 보낸 사진을 보며 울었던 기억들 

참 욕심이 많은 삶이었고 아직 욕망으로 사는 나를 몸을 굽혀  발을 본다.
"너의 꿈이 무엇이냐고 "말이다.
대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