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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연대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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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연대기

timsuh 2024. 2. 2. 07:10

1999년 한국은 매서운 칼바람이 전국을 휩쓸었고,그런 날선 칼날위를 걷는듯한 위태로움이 내곁에 슬그머니 날카로움을 드러내던 시간이 있었다.



어느 날씨 좋은날 미국에 첫발을 디딛던 그기억이 새롭다.
긴 비행시간에 지쳤으나, 세관앞에 서있는던 그긴장감을뒤로 하고 언어가 낯설고, 문화가 생소한 샌프란시스코.
"그래 몇년만쉬었다가자" 의 마음으로 여유롭던생각은 통장의 잔고가 줄어감과 함께  현실을 깨닫게 하는 스위치가 되고 ,정신을 차려 주위를 돌아볼때 쯤 ,사방이 꽉막힌 벽이 되어 있었다.
눈을 감고있어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불어오는 내음으로만으로 가름할수 있었던 느낌이 이제는 사라져 버렸고, 내가 서있는곳이 어디인지 , 주위에 사람들이 무슨이야기 를 주고 받는지 귀를 기우려도 그소리는 소음으로 만 받아드려지고,  낯설고 어색함 그리고 막연함을 어찌 말도 다할수있겠는가


키가 이만큼 더큰 하얀사람이 친절을 베플지만 그 의도를 알아들을수 없고,춤을 추듯이 걸음걸이,  희롱하듯이 손짓을 하면서  말을 주고받는 걸렁걸렁한 사람들
,말로만 듣던 동남아시아사람
,음악비디오에서 만  보았던  라틴사람들 각양각색의 사람들 속에서 이사람이 이사람같고 저사람이 저시람같은 어눌한 눈썰미를 누가 눈썰미가 좋다 했던가?

세월은 적응을 품고 오듯이 그 견디어 낸 시간만큼 익숙해지고 받아들어지는 시간을 품고 살다보니
80킬로에 달했단  몸이 이제는 68킬로로 변해버렸고.
거울 뒤에 숨겨진 나의 젊음이
이제는 잊어진 돌아가신 아버지의 잔영이 되어 거울 뒷에 서있구나


그렇게 머리는 빠지고 얼굴은 처지고 거울 뒤에  나의 젊음이 이제 헛웃음을 보내며 나를 위로한다

그래도 아직 가질 수 있는 것은 살림만 하던 아내가 이토록 똑순이 같은 생활력이 있는지  몰랐는데 나보다 더 사리에 밝고 이치에 능한 줄
비로소 알게 되었고
공부만 하던 아들이 의사가 되어 바라던 그 길선상에 서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 길에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부모란 이름으로 서있는 초로의 노부부에게 웃음을 보내고 따뜻한 눈길을 건네는 아들이 있어 좋다.
말수가 유난히 적고 조용하기만 한 딸이 살이 눈덮인 산모양 뽀얀 모습이 너무 많이 찐 살로  고민을 하더니,
어느 날 기숙사에서 돌아오는날 120파운드에 몸매로 환골탈태한 모습은 숨어져 있던 턱선이 살아나고 볼살에 묻혀버린 보조개가 드러나고 허리가 있음을 만천하에 알리며
167 센지 미터의 늘씬한 키가 그 살에 뭉개져 굴러다니는 줄만 알았던 그 딸의 다리가 그렇게 이뼈는 지는 이제 와서 알았다.


딸이 혹시 레즈비어인 아닌가 하여 조심스럽게 물어 보던날 실소를 날리며 우리의 걱정을 한번에 날려버리고 남자친구를 집안 도로에
턱하니 세워 놓고 우리에게 보여주던 날. 그날 또한 기억한다.
미국은 가족을 위해 살고, 가족밖에 모르는 힘을, 부여하는 능력이 있는지 우리는 우리밖에  몰랐습니다
우리네라 칭하고 그 아래 모여
아침으로 서로 출근을 서두르고 , 저녁으로 모여 식사를 나누고 때로는 외식도 하고 무한도전 예능을 보며 웃고 뒤집어지며 잠자리에 들고 ,


그렇게  부딪치고 살아오다.어느 날
갑자기 흔적만 남기고 수양회 떠나는 아이처럼 아들은 장가를 갔습니다.
그해 여름 아들방이 너무 시원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 겨울 우리 아들이 이방에서 3년을 추위와 싸웠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밉니다
그날 아들이 떠난 침대에서 이불을 두 개 덮고 후드티를 입은 채 털모자를 쓰고 자면서 한 번도 투정하거나 불평하지 않은 아들을 생각하며 잠들고 자고 일어나니 눈가에 눈물마른자국이 베개에  베어나도록
보상받지 못한 소비자처럼 넋을 잃었습니다.그러나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불편해 할까봐 말입니다
정말 가끔 아들이 오고 온 즉시 떠나는 아들을 보면서  섭섭한 마음이
올라와도내색하지 않고 늦은 저녁 와인 한잔에 한숨을 담아 떠나보냈습니다. 차츰 잊어지고 그리움도 사라지더군요


그래도 온 방을 뛰어다니며 대장노릇을 하던 딸이 탈잠옷을 입고 저녁을 반갑게 맞아주고 홈리스 같은 모습에서 아침에는 커리어 우먼처럼 꾸미고 출근하는 딸의 씩씩한 모습이 있어 기쁨이 24시간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딸이 하얀 드레스에 청초한 신부가 되어 또 그렇게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일주일 내내 지금껏 자기가 갖고 소유했던 모든 것을 가지고 떠나고 딸이 쓰던 방에는 쓰다 남겨진 옷장만이 딸 대신 방을 지킵니다.
우리가 쓰다 바려진 고물처럼 느껴지져 한참을 그방을 따나지 못하였습니다 .
안방물을 열면 바로 앞에  딸이 자던 방이 보이고
"엄마, 왜!"
하고 뛰어 나올것 같은 목소리가 귀전에 울려퍼지는것 같은데
그림자 스치듯 딸이 올것같아,다가올 것 같아 그해 내내방문을 닫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새벽에 부엌을 내려서면 점심을 준비하던  딸의 해맑은 웃음이 쏟아질 것 같아 계단 밟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웠고. 차를 주차시키고
문을 열려고 하면
먼저 문을 열고 웃어주던 딸의 웃음이 쏟아질 것 같아 가슴 설레던 날이 또 그 얼마였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시간 속에 아이들은 한여름의 더위속으로 타들어갔고, 긴 겨울에 추위 속에 얼어갔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여행을 합니다.
이일상에서 다른 일상으로 잠시 바꾸면 마음이 괜찮아질 거야 라는 최면을 나한데 걸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때뿐 다시 이 일상에는 아들이 있고 딸이 있더군요.
어제는 며느리 생일이라 온 가족이 식당에서 점심을 나누웠습니다.


아직은  낯가림이 심한 며느리는 웃고 있지만 그 웃음뒤에는 어색함이 묻어 나오고,아내는 몇 날을 고민하여 며느리에게 카드를 씁니다. 아내의 진심을 한 자 한 자에 꾹꾹 담아서 말입니다. 그 진심이 통했는지 며느리는 카드를 읽는 내내 울고 있습니다
그래도 며느리는 아직 한국정서가 있나 봅니다.
이제는 아들로 딸로가아닌
아들네 가족과 딸네 가족으로 군집명사가 되어  사랑해야 하나 봅니다.
아직은 아내와 둘이 사는 게 낯설지만그래도 그리워 쳐다볼 곳이 있고,보고프면 볼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오늘 새벽에는 딸이 코스코에서 진생본사이 한그루를 사 가지고와  우리에게 주고 출근을 했습니다.


이쁜 것을 보면 우 리 에게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진 딸이 있고. 맛있는 것을 보면 투고를 해와서 가져다주고 가는 아이들이 있는 이 생활에 작은 것에도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착한 며느리가 있는 이 시간을 간직할수 있다는 것이 나의 행복이고 복이 아닐까요.